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 대첩(축구) (문단 편집) == 도쿄 대첩의 한국 승리 이후 == 단순히 한일 양국의 희비가 교차한 것을 넘어 '''B조의 판도 자체가 흔들렸다.''' 원래는 한국과 일본이 1위를 다투고 UAE는 그저 복병에 지나지 않는 구도였지만 도쿄 대첩 결과 한국이 3연승 승점 9로 단독 1위에 오르고 UAE가 2승 1무 승점 7로 2위, 일본은 1승 1무 1패 승점 4로 3위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UAE가 승점 2 차이로 1위를 놓고 한국과 경쟁하게 된 것''' 이후 한국은 잠실에서 2위 UAE를 3-0으로 제압해 파죽의 4연승을 거둔 뒤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아쉽게 동점을 허용하는 무승부로 조 1위를 서서히 굳혀나간 반면, 일본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과의 2연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고[* 카자흐스탄전은 1-0으로 앞서가다 극장골을 먹혔고, 우즈베키스탄전은 1-0으로 뒤지고 있다가 종료 직전에 미우라의 극장골로 겨우 무승부를 거뒀다.] UAE는 한국전 패배 후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0-3의 예기치 않은 대패를 당하며[* 만일 UAE가 이 경기를 잡았다면 여전히 1위를 넘볼 수도 있었으나 당시의 카자흐스탄은 '''홈경기 깡패''' 수준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B조 최강 한국의 연승 행진까지도 저지했으니.....] 2위 싸움만 격화된다.[* 이 때 UAE는 2승 1무 2패 승점 7, 일본은 1승 3무 1패 승점 6, 카자흐스탄이 1승 3무 2패 승점 6으로 세 팀이 물고 물리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도쿄 홈구장에서 벌어진 한일전의 충격적인 2-1 역전패에다가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서마저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2위조차 위태로워지자 가모 슈 일본 감독이 --일본 국민들로부터 할복이나 하라는 성화를 못 버티며-- 국가대표팀에서 경질됐고, [[오카다 다케시]] 코치가 새롭게 후임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여담이지만, 도쿄 한일전 당시 [[대한축구협회]] [[김정남(축구인)|김정남]][*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무가 일본에 같이 왔는데, 일본 언론에서는 그에게 '''"한국이 지면 김정남 전무가 감독으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고 그래서 미리 왔다는데 사실이냐?"'''라면서 노골적인 힐난을 하는 식으로 질문을 하자, 김정남 전무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일본 감독이]] [[오카다 타케시|바뀐다길래 궁금해서 보러 왔다."]]''' 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5-1 대승을 거두고 난 뒤 일본 - UAE의 도쿄 경기를 주목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UAE가 이기면 경우에 따라서 1위를 UAE가 탈환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이는 말 그대로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 한국이 1위를 놓치는 시나리오는 일본과 UAE에 '''총 10골차'''로 패하는 것뿐이었으니, 한 마디로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당시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를 중계했던 MBC는 이 경기가 5-1로 끝나자마자 그냥 본선진출 자막을 바로 띄워버렸다.(...)] '''일본이 이기거나 무승부를 기록하면 한국의 1위가 무조건 확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잡아야만 UAE를 승점 2점차로 제치고 2위로 오를 수 있었는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전반 3분에 기록한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면서]] '''한국의 1위를 확정시켜준 것도 모자라 __일본의 자력 2위 가능성 자체를 말아먹었다.__ (.....)''' 차라리 일본이 이겼다면, 한국의 1위 확정은 둘째치고 일본 스스로 2위를 사수하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즉, UAE와의 무승부는 일본의 자존심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래서 이 날 경기 직후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983809_30717.html|흥분한 관중들이 선수들을 향하여 엄청난 폭언을 내지르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79209|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래서 [[조호르바루의 환희]] 문서의 영상을 보면, 대놓고 선수단에게 욕설을 하며 험악하게 항의를 하는 장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B조 1위 한국, 2위 UAE, 3위 일본 모두 2경기를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한국의 잔여 경기가 바로 일본과의 홈경기와 UAE와의 원정 경기였다.''' 즉 일본과 UAE는 한국전을 빼면 1경기만 남아있었고 각각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의 대진이라서 양팀 모두 홈경기는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한마디로 한국이 B조 2위를 결정지을 캐스팅 보트를 쥔 셈.''' 특히 11월 1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운동장]]에서 열리는 한일전이 일본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기였는데, 일본은 1승 4무 1패 승점 7, UAE가 2승 2무 2패 승점 8이었기 때문에 '''만약 일본이 서울에서 패할 경우 UAE가 1승만 추가해도 승점 1 차이로 조 3위 탈락할 운명이었다.''' 실제로 UAE의 전력상 한국전은 그냥 버리는 카드였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충분히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잠실 한일전에서 패한다면 UAE가 2위를 굳힐 절호의 찬스였던 것. 그나마 골득실에서 일본이 +2로 UAE의 -1보다는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과 최소한 무승부라도 거둔 뒤 카자흐스탄과의 홈경기를 대량 득점으로 이기고 한국이 UAE를 잡아주면 조 2위를 차지하는 경우의 수를 노릴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서울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둔 뒤 카자흐스탄을 이기고, UAE가 우즈베키스탄을 이기고 한국과의 홈경기에서 패하면 양팀 모두 승점이 11 로 같아진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골득실로 판가름나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과 무승부를 거둘 경우 무조건 카자흐스탄전에서 다득점을 하고, 한국이 UAE를 최대한 큰 점수차로 잡아줘야 2위가 가능했던 것.] 이처럼 일본은 2위를 하기 위해 한국과의 맞대결은 물론이고 이후 한국의 경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봐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게 되었는데, 설령 2위를 한다고 해도 당시 아시아 쿼터가 고작 3.5장이었던지라 A조 2위와의 아시아 최종예선 3위 결정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오세아니아 1위팀]]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해야 하는 가시밭길이 예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원정 경기에서 일본이 총력전을 벌인다고 해서 결과가 좋을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것과는 별개로 '''[[한일전]]의 특성상 한국이 일본을 봐주기는 커녕 오히려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력을 다하고 투지를 불태울 것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에''' 일본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한국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본과의 결전을 준비하는 반면에 일본은 반대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는데, 실제로 이 경기를 중계한 MBC의 송재익 캐스터는 '''"절벽에 매달린 일본이 과연 한국을 구명대로 사용할지, 아니면 한국이 초상집에 빨간 넥타이를 메고 가는[* 왜 하필 빨간 넥타이냐 하면 당시 한국팀의 유니폼 상의가 빨간색이었기 때문.] 조문객(...) 역할을 할지 조금은 미지수다."'''라는 드립을 날렸고 신문선 해설위원은 아예 한술 더 떠서 '''"상가를 방문할 때 조의금을 준비해서 웃지는 못하지 않느냐. 그런 심정일거다."'''라는 확인사살을 하기도. [[https://www.youtube.com/watch?v=6ZYXIG8hBSk&t=235s|당시 영상]] [[그러나 이 사진이|하지만 결과는 일본의 2-0 완승.]] 이 날 잠실 종합운동장에는 무려 '''8천여명'''의 일본 응원단이 집결했고[* 월드컵 지역예선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의 원정 응원단 규모는 당연한 것이지만, 이 때의 일본 응원단 숫자는 매우 이례적으로 많은 수준이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마치 중립 지역에서 경기를 치르는 듯한 광경이었을 정도. 물론, 이 때 일본의 상황이 매우 절박했기에 응원단이 예상보다 많이 집결한 것도 있다.] 일본 선수들 역시 지난 도쿄대첩 때의 한국팀에 맞먹는 투지로 맹렬히 움직였다. 경기 시작 후 약 2분도 채 안되어서 나나미가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이 종료되기도 전에 로페스가 추가골을 넣은 것을 한국이 만회하지 못하면서 완패한다. 하지만 이 승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기억되고 있지는 않은 잊혀진 경기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한일전 원정을 한 번 잡기도 했고 홍명보 외에도 일부 주전 선수들이 불참하였고 최용수도 당시에 경기 도중 코를 다치는 바람에 경기에서 빠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이미 본선행이 확정지어져 한일전이라는 것 외에는 동기부여가 전혀 없었다. 당시 팬들 반응도 '''에이 한일전 졌네 짜증나'''의 정도였지 열받아 들고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승점 2점차로 UAE를 제쳐 조 2위로 올라섰고, 다음날 UAE가 우즈베키스탄과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승점 1점차로 일본의 조 2위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일본은 카자흐스탄과 최종전을 치르게 된 반면, UAE는 B조 최강 한국과 최종전을 치르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의 조 2위가 확정된 상태였고 실제로 일본은 홈에서 치러진 카자흐스탄과의 최종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이 경기는 당시 KBS2에서 저녁 7시에 생중계를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축구 팬들도 꽤 많이 시청을 했는데, 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케이블TV의 보급율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파에서 웬만한 최종예선 경기를 전부 생중계를 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일본 경기의 경우 UAE전 원정경기와 홈경기, 카자흐스탄전 홈경기, 그리고 [[조호르바루의 환희]]로 불리는 플레이오프 이란전, 대륙간 플레이오프인 호주-이란 1,2차전 모두 국내 지상파에서 생중계를 했었다.] 다음날 열리는 한국-UAE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조 2위를 확정지어 A조 2위와의 아시아 3위 결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은 최종전으로부터 1주일 후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에서 단판 승부로 열린 A조 2위 이란과의 플레이오프 중립경기에서 [[조호르바루의 환희|극적인 3-2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전반전은 일본이 1-0으로 앞섰고 후반에는 이란이 2-1 역전에 성공했다가 다시 일본의 동점골로 2-2 가 되어 연장전에 돌입했는데, 연장후반 13분 오카노의 [[골든골]]이 터졌다.[* 이 때 [[나카타 히데토시]]는 혼자서 3도움을 기록했다.] 여담이지만 일본과 B조 2위를 다투던 UAE는 서울 한일전 결과에 대해 당연히 격분했는데,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708_19482.html|"한국같은 강팀이 어떻게 일본에 지느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차기 대회]] 공동개최국과 함께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승부조작이다!"'''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서울 한일전의 결과로 인해 충격을 받아서인지 우즈베키스탄과의 홈경기에서 당초 우세가 예상되었음에도 0-0 무승부를 거두고 이후 일본이 카자흐스탄을 5-1로 제압하면서 완전히 UAE가 탈락하게 되자, 한국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현지 분위기가 매우 흉흉했을 정도.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한일전|상대가 상대였던지라]] UAE의 승부조작 의혹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꽤 있었다. 붉은악마의 공식 응원 걸개중에는 LET'S GO TO FRANCE TOGETHER, 즉 한일 양국이 함께 월드컵 본선에 가자는 --나름 훈훈한-- 문구도 있긴 했지만[* 여담으로 나가누마 켄 당시 일본 축구협회장이 이 문구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이었을 뿐, 국민들 사이에는 '''"한국이 일본을 확실하게 뭉개서 아시아의 맹주임을 분명히 하고 겸사겸사 UAE를 2위로 올려주자!"'''라는 의식이 팽배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5587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58363|#]] 실제로, 두 번째 골을 허용한 순간 서울 거리에서 대형 전광판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시민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https://youtu.be/GKgWDoWQxTw?t=370|나라잃은 표정]]''' 그 자체.[* 참고로 영상 속 거리는 [[삼성역(도시철도)|삼성역]] 5번출구 쪽으로 추정된다.] (...) 반면 일본 팬들은 엄청 신났으며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539_13449.html|"(한국은) UAE를 이겨서 함께 월드컵에 가자!"는 외침까지 나왔다.]]''' 승부조작설에 대해서는 [[차범근]] 감독이 2002년 5월 방영된 MBC 스페셜을 통해서 '''"승부조작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본선에 진출해서 여유로웠던 반면에 일본은 워낙 벼랑끝이다보니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는데 여기에 밀려서 패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미 UAE와의 무승부 때 '''날계란이 선수들을 향해 날아다닐 정도로''' 이미 일본 내의 분위기가 말 그대로 '''폭풍전야'''였는데[* 공공장소에서 눈에 띄는 집단 행동 자체를 꺼리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저 정도면 축구팬들의 분노 지수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니 그전에 일본 답지 않게 서포터가 접이식 의자를 사람들 쪽에 집어던지는데다가 폭언은 기본이요 난동이나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때 그 의자가 [[미우라 카즈요시]]의 아내와 아이의 부근에 떨어져서 미우라가 대폭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웬만큼 폭언도 안하고 비겨서 침울한 미우라가 쳐나와 새끼야 라는 대사가 공공연연하게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고 선수들은 SP들의 보호로 겨우 버스에 탈 정도 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일본이 학생운동으로 험악했던 시절이 아니라 '''1997년'''이다.] 만약 서울 한일전에서마저 일본이 패해 조 3위로 아예 플레이오프 기회조차 못 잡았다면 [[나리타 국제공항]]은 둘째치고 '''[[김포국제공항]]'''에서부터 일본 응원단의 난동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말이 안되는 것이, 프로축구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이 그랬다간 후폭풍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인데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을 상대로 그랬다가는 당장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일전의 영향력이 많이 희석됐지만 당시엔 사실상 한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였다. 게다가 2022년 현재는 인터넷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일뽕]]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한국 인터넷이나 PC통신에서 대놓고 일뽕질 하다가는 게시판 어그로꾼이 아니라 '''삼대가 멸족당할 범죄 취급'''을 당했다. 괜히 PC통신에서 친일파로 유명했던 [[김완섭]]이 일본으로 도망간 게 아니다. 심지어 당시 예선을 승승장구하며 범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차범근도 져도 상관없는 이 한일전을 패한 뒤 인기가 확 꺾였다. 이런 정황으로 따져볼 때 차범근 감독의 주장대로 '''이 경기만큼은 투지력에서 밀려서 패배한 게 맞다.''' 게다가, 당시에는 일본의 신성으로 불리던 나카타 히데토시가 맹활약을 하기도 했고, [[홍명보]]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면서 전력상 [[다운그레이드]]가 되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62041|#]] 결국 도쿄 대첩으로 인해 그간 절치부심하던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진건 물론이요, 이후 경기에서도 계속된 졸전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이 또 좌절될 위기에 몰렸었지만 서울 한일전에서 반대로 일본이 이기며 기사회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 일본이 결국에는 말레이시아까지 가서 이란과의 플레이오프를 벌인 끝에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것을 감안하면, 도쿄 대첩은 한국에게나 일본에게나 절대 잊지 못할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억될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